황희진
‘보(洑)’ 대인(大人) 납시어 말씀하시니,
“강물들은 듣거라. 내 오늘부터 너희들의 분별없는 이동을 금하겠노라. 보아하니 너희들 이동하는 꼴이 실로 방자하더라. 여름이면 광복절 폭주족 마냥 산과 들을 파헤치며 사람들의 목숨과 재산을 빼앗고, 겨울이면 땅 밑으로 ‘홱’ 숨어버려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식수 고갈을 야기하니, 이 어찌 가만두고 볼 수 있겠느뇨. 해서 내 친히 강 한복판에 길게 자리하여 너희들의 이동을 단속할 것이라. 고로 평등한 수량과 유속으로 태평한 법치, 아니 수치의 환경을 만들 것이니라.”
이때 강 한구석에서 남루한 행색의 청년 강물 하나가 고이 물결을 일으키며 나와 읊조리니,
“보대인 들으소서. 소인 태백산맥 어느 자락 개울에 살던 촌뜨기이온데, 어느 날 포구래인(包區徠人)과 불도자(不圖者) 일당이 들이 닥치더니, 개울둑을 무너뜨리고 산을 파헤쳐 부모와 생이별하고 이곳까지 떠내려 오게 되었나이다. 본시 우리들 개울물들은 산천이 정해준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라 큰 강으로 나가 유람하다 비구름을 타고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데, 그 경로를 벗어나 갑자기 낯선 이곳으로 떠내려 오게 되니 오갈 길 몰라 쩔쩔매게 되었나이다. 이에 보대인 친히 납시어 아예 물길을 가로막는다 하시니, 고향에 두고 온 부모를 뫼시지 못하는 자식의 불효, 어찌 감당하란 말이나이까. 꺼흐흑.”
이에 보대인 언성을 높여 답하시니,
“어찌 계집마냥 질질 짜고만 있단 말이뇨. 네 부모, 아마도 지금은 포구래인과 불도자 공(公)들이 만든 수상공원에서 여생을 편히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라에서 거금을 들여 산천 곳곳에 그 같은 무릉도원을 만들고 있을지니, 너는 너무 염려치 말라. 너는 아직 젊으니 나와 함께 하천 개발에 힘 쏟다 늙으면 그곳으로 가 편히 여생을 누리면 될 것이다.”
청년 강물, 이 말을 듣고는 감복하여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아뿔싸, 저 멀리 래미곤두락(來迷坤枓洛)이 쏟아내는 곤구리두(琨構利杜) 반죽 속에 어미, 아비의 모습이 흥건히 보이니, 생이별하던 그날 어미, 아비는 곤구리두 공장으로 끌려가 공업용수가 되었던 것이라. 다시 만나고 싶어도 어미, 아비는 이제 곤구리두 벽 속에 굳어져 망향의 슬픔으로 밤낮을 지새울지니, 자식은 부모 곁을 지키려 그 흐름을 멈추고 고여 썩는 운명을 택할 것이라. 가엾고도 가여운지고.
바로 그 때, 천계에서 지켜보시던 옥황상제 결단을 내리시니,
“저 곤구리두 벽의 굳건함이 자연 이치의 굳건함에 비할까? 내 도교와 유교의 최고 수장으로써 자연의 유구한 법칙을 무너뜨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도리마저 짓밟아버린 보대인 저 놈을 용서치 않으리라. 여봐라, 천계의 수군을 내려 보내 저 놈을 깊숙이 수장시킴과 동시에, 천둥, 번개를 떨어뜨려 놈을 산산이 분해시키고 저 가여운 청년의 어미와 아비를 구하라!”
이에 천계의 용맹한 수군과 천둥, 번개가 요동을 치며 지상으로 돌진하니, 보대인 삽시간에 물속으로 잠기며 궤멸하더라. 헌데 옥황상제 미처 생각지 못하신 게 있으니, 지상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곤구리두 반죽의 원리를 미처 파악치 못하신 것이라. 처음에는 따로였던 물과 자갈과 모래, 굳어진 다음에는 다시 나눠질 수 없음이라. 오호통제라. 곤구리두 더미 속에 아예 산산조각이 나 흩어진 어미, 아비의 시신을 끝내 수습하지 못한 청년 강물, 세상에 크나큰 반감을 품고 폭도를 조직하니, 이후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미쳐서 산천을 헤집고 다니며 분노의 ‘침수신공’을 펼쳤다 하더라.
옥황상제 지상에 폭우 내리시고 청년 강물 어미, 아비를 여읜 날, 때는 명박제 3년 여름이었다.
2010.2.17 (7월 집중호우로 합천보, 함안보 수몰 이후 수정)
↓ 무릉도원의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