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Stevie Wonder


주의! 사진도 노래도 없는 참 심심한 포스팅입니다.




1

 
 한 뮤지션의 진정성이 이해되는 데 수년에서 수십년의 세월이 걸리고는 한다.
(오랜 시간 속에 삭혀지고 나서야, 우리는 '(보편적)명반'이라는 작위를 수여한다.) 
평단과 대중이 보내는 갖은 의혹과 의심의 눈초리를 헤치고 굳건한 반석 위에
음악적 진정성의 결실을 올려 놓기까지, 이미 발표한 음악에 대해 부수적 해명이란
있을 수 없기에, (발표된 작품은 하나의 텍스트로써 살벌한 평가, 해석의 장에
놓여지게 된다. 이미 발표된 이상 보완과 수정의 여지는 있을 수 없다.)  음악을
만드는 동안의 시간(자기 통제 하)보다는, 음악을 내놓고 난 이후의 시간(자기 통제 바깥)
이 더 큰 시련기라고 할 수 있다.


2
 
 황금의 70년대를 보낸 'Stevie Wonder(스티비 원더)'에게 80년대는 바로 그런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가 1980년에 발매한 ‘Hotter Than July'를 시작으로,
평단은 그에게 '작품성의 퇴보에 반비례하는 상업성 추구'라는 전형적인
상업성 담론을 공고히 한다. 바로 이전의 작품인 'Songs In The Key Of Life'가
워낙 대작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스케일이 빈약했고, 무엇보다도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눈에 띄는 작품적 혁신 없이 상업적 위치는 그대로 고수하는
'매너리즘'의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이전과 다른 음악적
시도와 사회적 아젠다의 제시가 존재했다.(Stevie Wonder의 앨범 릴리즈에
있어서 그때 그때의 사회적 문제를 명확하게 혹은 풍자적으로나마 짚어주는
것은 크게 평가할 만한 예술가적 과업이다.) 다만 80년대에는 이것이 쉽게
드러나지 못했고, 특히 사회적 아젠다의 경우 대중들은 그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Stevie Wonder라면 응당 이래야지.' 라고 하며 당연시 했을 뿐이다. (70년대에
비해 80년대는 흑인 민중들의 삶이 그나마 덜 각박스러웠기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생존' 자체에서 그 주변부로 점차 옮겨졌다. Stevie Wonder의
사회적 메세지 또한 그들 관심의 주변부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후 싱글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의 흥행과 앨범 'In Square
Circle'의 타이틀 곡 'Parttime Lover'의 흥행 등이 계속 이어지면서 상업적
담론은 점점 고착되어 버렸다. 결국 80년대 앨범들은 그를 일개 팝 스타의 지위로
끌어내렸고, 앨범 속에 내재된 진정성의 요소들은 철저히 무시되게 된다. 평단의
아젠다 설정은 무비판적으로 대중에 그대로 전이되었고, 이는 늘 혁신과
진보의 방향을 취했던 Stevie Wonder에게 자신의 음악적 잠재력을 스스로
잠식하게 만드는 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3
 
 이렇게 단순히 '흔한 팝'으로만 인식되었던 Stevie Wonder의 80년대 음악들이
그 진정성을 인정받아야 할 이유는 이후 팝 시장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82년
'Michael Jackson(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의 대흥행 이후 흑인음악의
쇼비지니스적인 영향력은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했고, 미국은 물론 영국, 유럽
팝 음악계의 상당 부분을 흑인음악 장르가 차지해 나가게 된다. 수요에 맞추어
외양은 그런데로 구축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었다. 음악이란 선형적인
전수 과정을 통해 이어지는 것이므로, 흑인음악적인 팝의 실현에 있어서 참고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전 시기의 흑인음악이었다. 여기서 양적, 질적인 욕구의 충족을
위해 뮤지션들 사이에서 주목된 것이 바로 Stevie Wonder가 이미 구축해 놓았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콘텐츠의 흑인음악들과 그 방법론이었다. 

 Stevie Wonder는 이미 70년대 'Songs In The Key Of Life'와 같은 앨범에서
가스펠, 재즈, 소울, 훵크 등의 흑인음악의 기본 영역은 물론 클래식, 락과 같은
요소들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컨버전시켜 높은 완성도의 곡들을 선보였었다. 이후
80년대의 앨범들은 그에 대한 심화와 보완의 방향을 띠었는데, 이것이 바로
상업성 담론에 가려져 주목되지 못한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거시적인 장르의
컨버전은 이미 이전 'Beatles(비틀즈)'에 의해 역사적 완성을 거친 아이디어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흑인음악을 팝 메인스트림의 중심에서 구사하게 된 뮤지션들에게
Beatles보다는 Stevie Wonder가 다져놓은 '지반'이 더 실용적이고 가치있게
다가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도 음악업계에서 'Stevie Wonder를 표방하는
누구누구...'라는 수사는 통하지 않는가! 개 중 김건모가 I Just Called Say I Love
You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Superstition까지 우려 먹은 것은 심하게 엇나간
방향이겠지만 말이다.)


4
 
 이렇듯 Stevie Wonder의 80년대는 70년대 음악 활동의 연장선에서 분명 음악사적
업적을 구축한 시기다. 물론 앨범 하나하나, 싱글 하나하나가 가지는 혁신성의
질량으로 상대적인 비교를 한다면, 80년대의 작품들은 그 혁신성에 있어 현저히
부족하다. 그러나 한 뮤지션의 진정성에 대한 의지의 표현을 ①'천재성이 깃든
순간 순간의 단발적인 것'으로만 볼 것이냐, 아니면 ②'작품에 대한 진득한 끈기의
과정으로써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냐의 관점에서 따져 볼 때, ②의
입장에서 Stevie Wonder의 80년대는 분명 가치를 지닌다. (참고로 ①의 입장은
Stevie Wonder의 '천재적이었던' 70년대를 가리킨다.) ①과 ②, 이 둘의 가치는 동등하다.  

 거장은 서둘러야 할 때(샘솟는 천재적 영감을 당최 주체 못 할 때)와 진득해야 할 때
(지긋이 심화와 보완을 거듭 추구해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안다. 급히 달려가야 할 때와
천천히 걸으며 숨을 고를 때를 아는 것이다. Stevie Wonder의 70년대와 80년대가 각각
그랬다.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Music Of Mind*가 아닐까?



* : 70년대 초 Stevie Wonder의 작가주의 시대를 연 앨범이자 전성기의 시작.

by moslow | 2009/08/26 20:07 | Guitar | 트랙백 | 덧글(1)

마이클 잭슨 그리고 시바

 '마이클 잭슨'은 파괴의 신 '시바'의 환생을 수행하고 다시 돌아갔다. 엥? 무슨 얘기냐고?

  

#1. 파괴의 신 '시바'


파괴의 신 '시바', 그는 우리시대
미디어 속에
서 그려지는 '절대악'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바'는 우리에게 '파괴의 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춤과 음악을 관장하고, 고행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신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시바의 '파괴'가 단순히 단절과 종말만을 일으키는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파괴'에만 국한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보기에 '파괴'란 '절대악의 전지전능한 권능' 쯤으로 보여진다. 지난 세기 전쟁 속에서, 또한 지금의 미디어(괴수영화, 스릴러 소설 등등)를 통해서 우리는 절대악의 파괴행위를 너무나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들에 의해 파괴가 이루어진 세상에는 잿빛 공허함만이 남고, 일말의 희망을 부여잡고 일어선 '선한자'들의 복수 역시도 결국 공허함만을 남길 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괴란, 결국 공허함만을 남기는 무의미한 가치일 뿐이다.

 그런데, 파괴의 본래 의미는 사실 그렇지 않다. 파괴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재)창조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다. 시대가 재창조를 원할 때, 이를 위해 누군가 파괴행위를 수행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역량과 고민과 책임을 요구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파괴의 권능은 사실 그만큼 수반되는 고통의 다른 모습이다. (시바의 성품은 매우 광폭하다고 한다. 이는 단지 파괴행위가 격렬하기에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자기 고통에 대한, 신으로써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일종의 '히스테리'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결국 시바는, 세상을 부수고 무너뜨리는 신이 아니라, 세상을 끊임없이 진일보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신인 것이다. 그를 '우주 최고의 원리'라고 칭한 힌두교의 교리는, 단순히 시바가 우주 최고의 파괴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인 '파괴와 창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우주 최고의 원리'라고 칭하는 것이다.

 

#2. 마이클 잭슨

 그렇다면 마이클 잭슨이 시바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뭐 그의 엄청난 음악적 영향력은 다소 비슷한 맥락에 있다마는...


마이클 잭슨 '드릴러'의 25주년 기념 재발매반 커버. 또한
드릴러
뮤직 비디오의 컨셉이기도 한데, 이제 보니 뭔가 '인도'스러운 것이,
시바와 마이클 잭슨의 연관성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마이클 잭슨은 20세기 대중음악사의 정점에서 살짝 빗겨난 위치에 서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점은 바로 '비틀즈'다. 대중의 열광을 주 동력으로 하는 '팝'의 패러다임을 정의했고, 음악적으로도 지난날의 유러피안트래디쇼널(우리말로 '클래식') 중심의 패러다임을 통쾌하게 전복시키며, 전위적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들이 내려 박은 음악적 뿌리는 수많은 갈래의 가지 확장을 일으켜 지금 대중음악의 수많은 장르와 씬이 존재하게끔 만들었다.

 그에 비하면 마이클 잭슨은 시기적으로나 음악적 역량에 있어서나 한발짝씩 뒤에 서있다. 그럼에도 마이클 잭슨이 중요한 것은, 마치 시바처럼 파괴행위의 업보를 지니고 일생동안 '팝'의 패러다임을 세상 온 전역에 깊숙이 스며들게 만든 것이다. 그에 비하면 비틀즈는 단지 팝의 골격과 이정표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기 창조된 세계(by 비틀즈)에 대하여 다시금 창조와 파괴를 수행(by 마이클 잭슨)하는 것이 바로 시바의 임무다.

 마이클 잭슨의 최고작 'Thriller(드릴러)'는 단발의 일시적 파괴가 아닌, 이후의 연쇄적인 파괴를 수행했다. 당시 주류였던 영미 팝씬을 양분하던 흑/백 감성의 융합, 작업방식에 있어 시퀀싱으로의 일대 변혁, MTV 출범 이후 비쥬얼 중심의 세련된 쇼 비즈니스의 구축, 일렉트로닉 부기 댄스의 창궐과 초 전염병적 확산(이는 지금 '동방신기'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주 질긴 그 무엇.)... 이렇듯 지금의 팝씬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아니, 절대적인!) 패러다임들이 모두 마이클 잭슨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고, 또한 이전의 전통을 과감히 깨 부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이클 잭슨의 이러한 파괴행위는 시바가 가진 10개의 손과도 맥을 같이한다. 마이클 잭슨이 영향을 끼친 영역은 단지 팝 뿐만이 아니라,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여가, 인권, 패션, 정치 등 매우 다양한데, 이는 시바가 가진 10개의 손으로 상징되는 접근의 다양성과 맥을 같이한다. 다양한 접근을 통한 영역의 융합(비쥬얼과 소리를 세련되게 합쳐낸 것이 마이클 잭슨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은 다시 분화와 확장을 이끌어내었고, 이는 결국 파괴와 창조의 순환구조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팝은 단순히 듣고 즐기는 무언가에 불과했던 반면, 마이클 잭슨 이후부터 팝은 듣고 즐기는 것에 더해서 따라하고 자신의 생활 속에 놓아둘 수 있는 것으로 그 기능이 확장되게 된다. 한 예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센세이션을 살펴보자. 대중들은 단지 문워크를 보고 즐기는 것에만 만족했는가? 아니면 그것을 일상 속에서 따라하며 새롭게 자신만의 문워크로 창조하는데 또한 관심을 쏟았는가? 작가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에서 원작을 끊임없이 보고 모방함으로써, 결국 새로운 아마추어적 창조를 수행해내는 독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수준높은 이데아적 원작(예: 문워크),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의 모방과 재해석, 이어지는 또다른 창조(이는 아마도 이후 팝씬의 장르 분화와 확장을 의미할 것이다.)... 바로 마이클 잭슨 이후의 팝씬에서 가능하게 된 일이다.


이데아적인 원본의 구축과 그에 대한 모방, 그리고 새로
운 것들의 탄
생...바로 진화의 패러다임이다. (공연 중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시연.)

 

#3. 나가며...

 예전에 '드릴러'를 처음 들었을 때, 촌스러운 음색과 단순한 리듬 반복에 코웃음을 쳤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 '동방신기'에서부터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팝씬의 조무래기들이 남긴 음악들을 듣고 보니까, 그가 제시했던 '팝 이데아'의 엄청난 텍스트적 가치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물론 아직 그 위대함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ㅠㅠ)

 또한, 동시에 느끼게 된 것은 그 이면에 무수히 존재했을 고뇌와 번민이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써 이데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필요로 하는 작업일테니 말이다.(천재들은 무조건 쉽게 쉽게 뚝닥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이는 사실 엘리트 기득권 층을 빛내려는 미디어 이데올로기의 폐해다.)

 시바는 파괴의 신이며, 춤과 음악을 관장하고, 고행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이클 잭슨은 정신적 공허함으로 찌들었던 20세기에 재림했던 시바의 환생체는 아니었을까? 그는 끊임없이 팝씬과 대중사회를 파괴(및 재창조)했으며, 가히 초월적인 춤과 음악의 족적을 남겼다. 이는 정신적 고행을 겪으며 혼란한 근대시기를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베푼, 어떤 감성적 은혜였으리라.


아이돌로 밥벌어먹고 사는 너희들,.. 마이클 잭슨 엉아가 기
축해
놓은 팝 패러다임과 그 밥벌이 구조때문에 너네도 존재하는거야.
고마운 줄 알어 이거뜨라~

 

ps. 그를 신으로 미화시킬 의도는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비유와 표현의 언어 중에서, 과연 지금 '신'이라는 미사여구를 진정 적용할만한 대중음악계 인사는 누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쵸큼 수긍이 가리라고 생각 된다. 아. 근데 정말 그는 God of Electronic Boogie Dance다. 이전에 그런거 없었고, 지금도 없다. 최근 천국에 '춤의 신' 자리가 공석이 났다는데, 아마도 그래서 급히 인사발령 받고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ㅠㅠ




마이클 잭슨 = 시바. 아마도 그래서 인도와 잘 어울리는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롤랑 바르트를 통해서 발리우드의 대안적 가능성을 엿본다.

by moslow | 2009/08/14 18:59 | Guitar | 트랙백 | 덧글(2)

미쓰 홍당무 OST - 나도 공주가 되고 싶어

 
*가지고 있는 음원을 리핑하는 포스팅이 아니라서 왠지 낯섬. ☞☜
그래서 막 남의 얘기 하는 듯한 느낌, 그리고 음악보단 영화 얘기... 아무튼.
너무 좋은 노래, 너무 좋은 영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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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슨
영화 '미쓰 홍당무'의 주인공인 양미숙(공효진)의 주제가.

이 곡은,
동양적 무속신앙과 윤회사상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닭->노예->인간(양미숙) 으로,
즉 선형적으로 발전하는 서구사회적 발전론을 기반으로 하는...
동/서 사상의 개짬뽕 믹스쳐다. (작사는 영화감독 이경미 / 편곡은 어어부의 장영규 ㄷㄷㄷ)

어! 그렇다면, 한번만 더 기다리면, 인간 다음에는
인간보다 더 발전된 존재인 '공주'가 될 수도 있는거 아닌가?

근데 아니다.
인간이란 과거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확신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한치 앞이라도 늘 불확실해 하는 존재이니까.
(마르크스가 사회발전의 마지막 단계로 유토피아를 예언한 것은
결국 틀리고 말았잖는가. 그렇듯 '공주'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 것.)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늘 삶의 발목이 잡히고야 마는 것.

근데, '양미숙 aka Miss 홍당무'는 그걸 극복해버리고 만다.
(그게 뭔지는 영화를 직접 보고 느끼시라...)

이 노래는 양미숙의 시궁창같은 현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주제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입산한 비구니의 염불'과 같은 기제가 되어
양미숙을 참된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도'가 어디 따로 있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면,
지금 네 자신이 바로 공주다."
           

                                                                 (영화 대사 아님. 내가 생각한 거임.ㅋ)

점집으로 향했어
나의 전생 뭐였을까
나는 공주였을까
현생에선 이 고생인데
점쟁이가 말했어
넌 전생에 노예였다고
씨발 졸라 충실한 개 같은 노예

억장이 무너졌어
그게 전분 아닐꺼야
한 번 더 물어봤어
노예 전엔 뭐였냐고
점쟁이가 말했어
그전에 넌 닭 이었다고
것도 졸라 머리작은 닭대가리

그래 그래서 내가 이런가
그래결국 그거였어
그럼나는 언제 공주되나

나도 공주 한 번 되고싶어
나도 공주 한 번 되고싶어
나도 공주 한 번 되고싶어

훠이훠이~!






리뷰 :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st=code&sword=66002&nid=1958821

by moslow | 2009/08/12 00:59 | Guitar | 트랙백 | 덧글(3)

♥K.O.D


아 사진 뭔가 웃기다. 옛집식당과 힙합 ㅋㅋㅋ 그래 K.O.D도 이제 옛날힙합이 되었지 ㅠㅠ



육점(6Point)과 배삼(Bae3) 그리고 제이슨(Z.A.Son)으로 구성된
K.O.D라는 팀은, 사실 그다지 대단한 디스코그라피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어떤 큰 족적을 남기지도 않았으며) 프로듀서 Z.A.Son이 그렇게 유별나게
독특한 프로듀싱 스타일을 선보였던 것도 아니고, 랩을 담당하는 배삼과 육점 역시
우리나라 힙합 초기의 '체계화되지 못한' 랩 스타일을 선보였던 부류에
지나지 않는다.

자, 여기까지는 다소 상투적인 관점에서의 (다소 심심한) 뮤지션 분석하기.
이제부터는 재미난 간증. 시작~ ㅋ





K.O.D - Around Us from [MP Hiphop Project 대박](2001)

Z.A.Son이 프로듀싱했던 Around Us(MP힙합 '대박'앨범) 같은 곡을 들어보면,
엄청 단순한 룹임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서의 엔지니어링만으로도
곡 자체가 엄청 고급스러워지고 다채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 본토 대다수의 올드스쿨 힙합곡들의 경우 당시 기술적 한계상 어쩔 수 없이
샘플 원본 그대로의 날스러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특유의 생동감을
만들어내었다면, 반대로 이 곡의 경우 그 정반합의 관점에서 의도적인 엔지니어링으로
또다른 특유의 톤과 분위기를 얻은 경우다.

결국 프로듀싱의 범주 안에서 엔지니어링은 단순히 기술적 보정 작업이 아닌
그 이상의 미학적 기능을 하고,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던 곡이다.





K.O.D - 내가 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from [The Konexion](2002)

최근에 중고로 구했다. 이 트랙이 너무 듣고 싶어서. 막 가지고 싶어서.

2002년 즈음에 내 주변에는 Verbal Jint 추종자들이 참 많았는데,
그들의 교리인 '다음절 라임 절대론'을 적용시켜 보자면, 육점과 배삼은
그야말로 캐병신 MC들이 되어버린다. (물론 나는 이걸 부정했지만,
라임이 다냐고? 라임이 다냐고? 하면서 ㅋ)

당시 팽배해 있던 저 편협한 관점은 결국 수정과 보완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여기에는 Verbal Jint의 깨달음 + 성장도 한몫했다. 자신이 직접 랩에서
실천했거든. '단순히 눈에 보이는 다음절 라임이 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결국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수준 높은 관점에서 랩을 대하는 것 같다.
라임, 플로우 이런식으로 나눠 보는게 아니라, 전체적인 관점에서 랩
그 자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당시 배삼과 육점의 랩을 바라보자면, 그 가치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유연하고 느긋하게 썰을 풀어
내면서도, 절대 리듬감에 뒤쳐지거나 앞서거나 하지 않으면서 유기적으로
비트에 스며드는 랩.

특히 배삼의 랩을 참 좋아해서, 당시에 많이 따라하고 그랬었다. ㅋㅋㅋ
목소리 톤도 마음에 들었고, 발음이나 호흡, 말 끝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간지, 미국 본토의 랩을 한국어로 제대로 컨버전시킨다면 이게 모범 답안
이지않겠나 하고 자주 생각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그게 모두
억지스럽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왔다는 것. (지난날 억지 본토삘을
흉내내던 한국 랩퍼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설명이 너무 추상적인데, 사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들이 있다.
그냥 밑에 이거 한번 들으면 육점과 배삼의 랩이 어느 정도인가 아실 수 있을듯.
(초반에 미쓰라 진이 너무 날아다녀 버려서 상대적으로 죽는 감이 좀 있지만 ㅋ)



Da Crew - 진일보 (Genuine Pace) from [Coma](2002)

랩 순서 : 미쓰라 진, 배삼, 육점, Seven



지금은 360 Sounds라는 우리나라 최고 디제잉 퍼포먼스 단체의 일원이
되어버린 Soulscape, Smood, Make1 등의 인사들과 친한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까지도 그들과 함께 음악활동을 계속 했더라면 참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육점은 다이나믹 듀오랑 같이 활동도 하더니만, 아! 그때 Z.A.Son이
뉴질랜드에서 만들었다던, 육점이 랩을 피쳐링한 Let's Go 도 참 좋게 들었다.
이후 Z.A.Son은 다시 한국 돌아와서 Psypodias라는 이름으로 일렉트로니카
성향의 인스 앨범도 내더니만, 묻혀버려서 좀 아쉽.



Dynamic Duo - Let's Go from [Double Dynamite](2005)



어디서 뭐하나, 육점과 배삼 그리고 제이슨.
힙합키드 시절 내 머리 속 적지않은 지분을 소유했던
당신들이 그리워용. ㅡㅜ



*2001 대한민국에 K-Ryders와 함께 참여했던 'Saint'는 왠지 K.O.D의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포스팅에서 제외함. (다이나믹 듀오 1집의 '비극 pt.1'은
미안하지만 좀 졸작인 것 같아 제외.) 그외 CB Mass 1집에서의 Z.A.Son 참여곡 등
기타 특색 없는 피쳐링 트랙들도 제외. 또한 비공식 트랙이나 Live 음원 등도
다수 존재할 것 같으나 그것은 제가 가진 데이타의 한계 때문에, 포스팅에
부실함을 남기네요. 허나 나의 '팬심(心)'은 그렇지 않음.

아무튼 K.O.D Forever!

by moslow | 2009/07/09 17:31 | Music Makes Me Real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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